1875년
르누아르
필라델피아 미술관
르누아르의 초기 작품입니다.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화가인 르누아르. 항상 르누아르가 주창하는 < 그림은 아름다워야 한다! > 정말 공감하는 명언입니다.
르그랑 양이 8살 때 그린 그림으로 목에 두른 파란 스카프와 같은 색상의 머리띠 그리고 삐뚤어진 금목걸이가 눈에 띈다.
다른 쪽을 응시하고 있어서 실제로 그림을 오랫동안 그림을 봤는데, 좌 우로 아무리 움직여도 눈을 맞출 수가 없었다 ^_^
르그랑과 르누아르는 무슨 관계였을까? 르그랑의 부모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데, 아버지는 상점점원이었다고 한다.
훗날 르그랑의 결혼식에도 르누아르가 참석했단다.
훌륭한 예술가와 친분이 있었던 관계로 귀여운 딸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르그랑의 아버지가 많이 부럽다. 비록 그의 딸을 그린 그림 원본은 소장하지 못하였어도 르그랑의 아버지는 얼마나 좋아했을까?
2010년 2월에 예술의 전당에서 이 그림을 실제로 보았다. 좌 우로 계속 움직이며 르그랑 양과 눈을 맞추려고 노력했는데 절대로 안 되었다. 그 당시에 한그림 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내가 지금 생각하면 주변 사람들이 어찌 보았을까?
당시 이 전시회에서 볼만한 그림은 이 그림 포함 딱 세 점이었다. 내 돈 내고 들어 갔으면 정말 아까운 전시회였다. 다행히 무료 초대권이 있어 우리는 무료로 봤다.
피에르 오그스트 르누아르( Pierre-Auguste Renoir 1841~1919 )
1841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1862년 샤를 글레르의 아틀리에에 들어가 모네, 시슬레, 피사로, 바지위 등을 알게 되고 또 피사로, 세잔과도 사귀어, 훗날 인상파운동을 지향한 젊은 혁신화가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초기에는 들라크루아, 쿠르베 등의 영향을 받았다.
1870년 프이이센-프랑스 전쟁에 종군한 후에는 점차 밝은 작품을 그렸다.
모네, 시슬레와 함께 제작을 했으며 인상파 제1회 전시회(1874)에 < 관람석 >을 출품했다.
인상파 그룹의 한 사람으로서 더욱더 눈부시게 빛나는 색채표현을 전개하였다.
1881년 이탈리아를 여행, 라파엘로나 폼페이의 벽화에서 감동을 받고부터는 그의 화풍도 마침내 한 전기를 맞이하였다. 귀국 후 담백한 색조로써 선과 포름 (Forme 사물의 형태)을 명확하게 그려서 화면구성에 깊은 의미를 쏟은 고전적인 경향을 띤 작품들을 그렸다.
그 후 완전히 인상파에서 이탈하여 재차 독자적인 풍부한 색채표현을 되찾아 원색대비에 의한 원숙한 작풍을 확립하였다.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등의 색깔을 선명하게 칠하여 색채 화가라 불리였고, 특히 적색의 표현에 뛰어나 근대 최대의 색채 화가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미술의 우아한 전통을 근대에 계승한 뛰어난 색채화가다.
1900년에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르누아르의 생애는 평온했으나 말년에는 지병인 류머티즘 관절염 때문에 손가락에 연필을 매고 그리면서도 마지막까지 제작하는 기쁨을 잃지 않았다. 최후 10년 간은 조수를 써서 조각에도 손대었다.
프랑스 영화감독 장 르느와르가 그의 둘째 아들이다
나는 르누아르의 열열한 팬입니다. 그래서 내 블로그에 르누아르의 그림이 자주 소개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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