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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 - 마티스

야수II 2023. 5. 9.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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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 - 마티스

1910년

마티스
러시아 상테르스부르크 헤르미티지 미술관
 
야수파 마티즈의 대표작
관람객이 그림 보고 "그 여자 팔 한 번 기네!"라고 하자 마티스가 정중하게 "잘못 보셨군요, 부인. 이건 여자가 아니라 그림입니다" 했단다. 
 
 
중학교 미술시간에 처음 < 야수파 > 란 말이 나와서 내 별명이 야수가 되었는데...
 
야수파 (野獸派  Fauvism)는 20세기 초반의 나타났다. 
강렬한 표현과 색을 선호했다. 야수파의 흐름 자체는 1900년경에 시작되어 1910년 이후까지 지속되기는 했으나, 실제 야수파 운동은 1905년부터 1907년까지 약 3년 동안 세 차례의 전시회를 갖는 데 그쳤으며 결속력도 약했다. 이 운동의 기수로는 앙리 마티스와  앙드레 드레인이 있었다.
기법상의 특징은 강한 붓질과 과감한 원색 처리, 그리고 대상에 대한 고도의 간략화와 추상화이다. 눈에 보이는 색채가 아닌 마음에 느껴지는 색채를 밝고 거침없이 표현했다. 이지적인 큐비즘 (Cubism 입체파) 과는 달리 감정을 중시한다. 표현주의의 한 형태로도 볼 수 있다.
 
야수파의 어원의 탄생도 인상파의 어원 탄생과 비슷하다. 조롱에서 시작된 것 같다.
야수파운동은 인상파나 신인상파의 타성적인 화풍에 반기를 든 젊은 작가들의 일시적인 만남에서 형성되었다. 통설로는 당시 미술평론가 루이 보셀이 1905년 살롱 도톤(Salon d'Automne)에 출품되었던 마르케의 15세기풍의 청동조각을 보고 "야수(포브)의 우리에 갇혀 있는 듯한 도나텔로(르네상스 초기의 이탈리아 조각가)"라고 평한 데서 포비즘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한다. 그러나 마티스부인과 보셀 등의 증언이 모두 달라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1905년 <일뤼스트라시옹>誌 11월호에 당시 살롱 도톤의 회장을 야수의 조교사에 비유한 풍자화가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이해 가을에는 'Fauve(야수)'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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