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2년경
엘리자베타 시라니 or 구이도 레니 (엘리자베타가 맞지 않을까?)
로마 국립 미술관
베아트리체 첸지 (1577~1599)가 처형당한 날짜가 9월 11일이라네요. 911.....
베아트리체 첸치( Beatrice Cenci, 1577. 2. 6. ~ 1599. 9. 11. 이탈리아 )
프란체스코 첸치 (베아트리체의 아버지로 이탈리아의 귀족)는 아내와 아들들을 학대하였으며, 너무나 아름다운 딸인 베아트리체를 강간했다고 한다. 그는 다른 죄목으로 투옥되었으나, 얼마 안 가 귀족이라는 이유로 정상참작이 되어 풀려났다. 베아트리체는 당국에 아버지의 상습적인 학대를 신고했으나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프란체스코는 자신을 신고했다는 사실을 알고 베아트리체를 로마에서 내쫓아 지방에 소유하고 있는 성에 가둬 놓았다.
베아트리체와 그녀를 동정했던 새엄마, 친오빠, 이복남동생은 프란체스코에게 복수하기로 하고, 그를 죽이기 위한 음모를 계획하였다. 1598년 9월 9일, 두 명의 하인이 베아트리체를 도와 프란체스코가 성 안에 머무는 동안 그에게 독약을 먹였지만 실패하였다. 그 후 베아트리체와 그녀의 형제, 새엄마는 흉기로 프란체스코를 죽인 다음, 실족사한 것처럼 위장하려고 높은 난간에서 시신을 떨어뜨렸다. 그러나 세간에선 아무도 프란체스코가 사고로 죽었다고 믿지 않았다.
프란체스코가 죽었다는 사실을 안 교황은 경찰을 시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고 했다. 베아트리체를 비롯한 첸치 가문의 가담자 전원이 체포되었으며, 유죄로 인정되어 사형 판결을 받았다. 로마의 일반 시민들은 정당방위를 주장하며 법원의 결정에 항의했으며, 결국 사형 집행은 계속 미루어졌다. 하지만 교황 클레멘스 8세는 일말의 자비심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베아트리체는 1599년 9월 11일 새벽녘에 산타젤로 다리로 끌려 나와 처형대에 올라 참수되었다. 그리고 교황에게 전 재산이 몰수되는 재산 몰수형을 당하였다. 당시에 교황이 베아트리체 첸지 가문의 재산을 몰수하기 위하여 일말의 자비심도 없이 그녀의 일가족을 처형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후 로마의 시민들은 베아트리체를 오만한 귀족 계급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삼았다.
위의 그림은 베아트리체가 처형대로 올라가는 도중에 뒤를 돌아보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당시 처형장에는 그녀의 아름답고 순수한 모습을 보기 위해 화가인 구이도 레니를 포함한 수많은 군중이 몰렸다고 한다.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1665년 베르메르)는 베아트리체 첸지의 초상을 본 베르메르가 영감을 받아 똑같은 구도로 그렸다고도 한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스탕달의 기분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이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같은 기분이었다.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 또는 스탕달 증후군)은 아름다운 그림 같은 뛰어난 예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심장이 빨리 뛰고, 의식 혼란, 어지러움증, 환각 등의 증상을 경험하는 현상입니다.
피렌체 증후군 또는 플로렌스 (피렌체의 영어 이름)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죽기 전에 꼭 한번 보고 싶은 그림 FI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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