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8년~1512년 ( 4년에 걸쳐 완성 )
미켈란젤로
바티칸
바티칸시티의 시스티나 성당의 프레스코 천장벽화로 세계 최대 크기의 벽화다.
바티칸시티에 갔을 때 봤다.... 천장에서 이 부분 찾는다고 목 뒤로 젖히고 한참 헤매었었다.
ET의 손가락 장면도 이 그림에서 나왔겠지?
실제로 그림을 보면 미켈란젤로가 얼마나 그림작업에 어려움이 있었는지를 느낄 수가 있다. 4년에 걸쳐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 그 오랜 기간 동안 높은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그림을 그리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 그림물감이 눈과 온몸에 떨어져 시력도 안 좋아지고, 온몸에 피부병도 생겼고 또 거꾸로 그리는 자세로 인하여 몸도 뒤틀어졌다고 합니다.
< 최후의 심판 >中에 자신의 얼굴을 인간 가죽에 넣은 미켈란 젤로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미켈란젤로는 다빈치, 라파엘로와 함께 르네상스시대를 이끌었다. 그의 그림 및 조각으로 당대 및 후세, 많은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 주고 감동을 느끼게 했다. 과연 당시 미켈란젤로 자신도 즐거운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을까?
이벽화를 의뢰한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언제 그림이 작업이 끝나냐고 묻자 < 그림이 완성되는 날 끝나다 >라고 대답했단다.
미켈란젤로의 < 피에타 Pieta 1498~1499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 >를 바티칸에 갔을 때 봤는데, 또 보고 싶다.
피렌체에 갔을 때 왜 다비드상을 못 보았을까? 그때는 미술에 대한 상식이 아주 부족했다. 아쉽다!
피에타 (Pietà)는 이탈리아어로 슬픔, 비탄을 뜻하는 말로 기독교 예술의 주제 중의 하나이다. 주로 성모 마리아가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그리스도를 떠받치고 비통에 잠긴 모습을 묘사한 것을 말하며 주로 조각작품으로 표현된다.
미켈란 젤로 ( 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 ~ 1564 )
1475년 이탈리아 카프레세 출생.
1488년 13세에 기를난다요(Ghirlandajo)에게 입문하였다.
메디치家의 로렌초 일 마니피코(Lorenzo il Magnifico)에게 인정받아, 그의 집에서 체류하면서 인문 학자들과도 접촉, 고전문학이나 신구약 성서를 탐독함과 동시에 조각을 위한 인체 해부에도 전념하였다.
1492년 로렌초가 죽은 후, 프랑스군이 침입하자 볼로냐로 피난하였다.
1496년 로마로 와서 1499년경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대성당에 있는 《피에타 Pieta》를 프랑스 추기경의 의뢰로 완성하였다.
1501년 피렌체로 돌아와 시청으로부터 《다비드》의 대리석상을 부탁받아 1504년에 완성하였다.
1504년 피렌체 시청에 《카시나의 싸움 Battle of Cascina》의 벽화를 의뢰받아, 건너편 벽면에 《안기리의 기마전》을 그리게 되어 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경쟁하였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이듬해 율리우스 2세에게 불려 로마로 가서, 율리우스 2세의 기념 묘비를 만들게 되었다. 그런데 브라만테가 산 피에트로대성당의 개축에 착수한 이래, 율리우스 2세가 냉담해지자, 이에 성이 난 그는 피렌체로 돌아와 다시 《카시나의 싸움》 제작에 전념하였다.
1508년 율리우스 2세로부터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장畵를 위촉받아 1512년에 완성하였다. 《천지 창조》 《인간의 타락》 《노아 이야기》의 3장 9 화면을 구약 내용의 순서와는 반대로 그렸다. 천장화 완성의 다음 해에 율리우스 2세가 사망하였기에, 미완성의 묘비를 완성하기 위하여 1513∼1518년에 묘비의 중심彫像이 될 《모세》- 좌상 높이 235Cm, 《죽어가는 노예》, 《방황하는 노예》등을 만들었으나, 메디치家 출신의 교황 레오 10세가 새로이 피렌체의 산 로렌초성당의 파사드의 건축을 강요하였기 때문에, 그 후 율리우스 2세의 묘비는 중단되었다.
1520년 피렌체의 메디치家 묘비의 제작을 의뢰받아, 1524년에 착수, 10년간이나 걸렸으나 끝내 미완성으로 끝났다.
그 사이 산 로렌초성당 부속의 라우렌치아나도서관의 건축에 종사하였고,
1529년에는 독일의 칼 5세軍의 피렌체 포위를 맞아, 방위위원으로서 축성에도 임하였다. 그 후 메디치家의 전제군주 알렉산드로와 반목하여, 메디치家 묘비를 미완성의 상태로 둔 채 1534년에 피렌체와 영원히 결별하며 로마로 옮겼다.
1534년 새 교황 바올 3세로부터 시스티나성당의 안쪽 벽을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고 1535년부터 혼자 착수, 6년 후인 1541년에 《최후의 심판》을 완성하였다. 그리스도가 ‘성난 그리스도’로서 거인처럼 군림하여, 천국에 오르는 자와 지옥으로 떨어지는 자가 좌우로 크게 회전하는 군상을 지배하고 있다.
1564년 피렌체에 대한 향수에 젖어 말년을 보내다가 89세에 卒.
최후의 심판 천정 벽화 전체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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